PC에서 보시면 더 넓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년은 바쁜 축에도 못 낍니다, 라고 먼저 적어놓고  지난 3년의 기록을 보니 ... 그냥 4년 내내 바빴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22년의 '모든 체력을 갉아먹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네요. 그 체력에서 더 쥐어짜내서 일했으니까요.  2023년은 바쁜건 물론이고, 다사다난했던 해입니다. 올 초부터 많은 기업들에게 연락을 받아서 노력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세상이 내 것 같기도 했고, 콜라보레이션 계약서에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 4시간 후에 큰 발목 수술이 잡혀 병원 화장실에서 눈물을 짜내기도 했습니다. 발목과 어깨와 손가락 재활을 하고, 모든 인생 통틀어 가장 좋은집으로 이사한것도, 단순히 면역력이 떨어져 병원을 제집드나들듯 다닌것도, 해외여행을 내맘대로 2번이나 간 것도 다 올 한해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100와 -100을 왔다갔다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해였지요. 

 행복했냐고 물으신다면, 그 와중에도 행복했습니다. 너무 일이 많아서 작업실 창문 열고 뛰어내리고 싶은 순간도 복에 겨운 순간이었지요. 하지만 누군가 행복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뜯어말리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엔 정말.. 정말 많은 책임이 필요합니다.


길게 보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요약

●1월 : 3D 프로그램 블렌더를 공부했다. 추워서 일 못했다.          ● 2월 : 크리에이티브마스터즈 마켓 준비를 했다.           ● 3월 : 네모가방을 개발했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마켓을 나가고 메이커스마크 일을 시작했다. 발목을 수술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4월 : 메이커스마크 일을 했다. 발목 수술 날짜를 잡았다.           ● 5월 : 메이커스마크 일을 끝마치고 발목 수술을 했다.          ● 6월 : 발목수술로 회복하는 와중에도 출근을 했다.  오휘에서 연락이 왔다.         ● 7월 : 리본가방을 개발했다. 오휘랑 일하게 되었다.           ● 8월 : 오휘일을 했다. 유진투자증권에서 연락이 왔다.      ● 9월 : 오휘일을 끝냈다. 발목 재활을 하기 시작했다.          ● 10월 : 오사카를 여행했다. 유진투자증권 일을 했다.           ● 11월 : 유진투자증권 굿즈를 제작했다.          ● 12월 : 도요타 굿즈를 제작했다. 오사카여행을 갔다. 독감에 걸렸다.


23년 1월 4일

갑작스럽게 브랜딩스튜디오와 미팅이 잡혀서 급하게 서울을 다녀왔다. 미팅간 스튜디오 대표님께서 청바지 업사이클 사업을 하시던 분이라 많은 도움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리브랜딩 제안이라 고민 끝에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시히는 기시히대로 두자. 브랜딩 할 돈도 없다. 




 

23년 1월 7일


갑자기 기시히 로고를 3D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블렌더를 깔고 유튜브로 보고 공부해서 5시간만에 돌아가는 로고를 만들어 냈다!




23년 1월 8일


사이트 디자인을 바꾸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여러 자료들을 찾다가 움직이는 메인을 만들어 냈다. 마우스 커서 디자인도 바꿨다. 나는 만능이 되었다!




23년 1월 9일


최고의 대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왔다.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방방 뛰었는데 뒤이어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기시히에서 대량생산을 한 번도 안해보기도 했고, 납기일이 너무 빠듯해서 제작 기간 짜다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끔찍한 스트레스였다. 하필 탄수화물과 소금없는 식단을 하루종일 먹어서인지 밤에 잠도 안오고, 심장도 두근거리고,  자다가 깨서 잠도 다시 못자는 끔찍한 날이었다! 감히 거절해서는 안되는 제안이라 속으로 '제발 저 기업에서 안한다고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수백번 생각했다. 기업 홍보 담당자는 급하다고 급하다고 빨리 연락달라고 해놓고선, 할지 안할지 연락준다고 해놓고 연락도 없었다! 




23년 1월 12일

다른 담당자님께서 필요한 자료가 있다해서 이런 저런 자료를 넘기고 별 기대없이 일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이번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나 또한 100% 이해되는 합당한 이유라 서운하진 않았다. 연락 오기 전 부터 대강 알고있었고 나 또한 "왜?이 협업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락도 바로 주셔서 마음이 편했다. 대기업과의 협업은 짜릿하겠지만 감히 나 따위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제안이었다. 하지만 아쉽긴 아쉽다. 많이 아쉽다. 아주 많이. 그런데 하라면 부담스럽긴 하다. 연락이 온게 어딘가? 



 

23년 2월 3일

다음스마트워크로 메일이 수신되지 않는 문제로 하이웍스로 메일 회사를 바꿨다. 이 문제는 kisihi.com을 식스샵이 아닌 아임웹으로 바꾸면서 벌어진 일인데, 사이트는 22년 8월에 바꾸고 메일수신이 안된다는사실은 23년 2월에 알았다. 왠지 메일이 한 통도 안오더라. 많이 서운했었는데, 내가 문제일 줄은 몰랐지. 6개월동안 메일을 한 통도 못받았다. 아이고..!



23년 2월 8일

3월 17일 ~ 19일 동안 잠실에서 열리는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마켓에 초대받았다! 이런 오프라인 행사를 늘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로 간다고 응했다! 안갈리가!



23년 2월 18일

크마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블렌더로 전시장을 디자인했다. 에어팟케이스를 만들면서 나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도 이렇게 써먹을 수 있을만큼 할 수 있다니! 연초에 왠지 3D가 배우고 싶다 했다.



23년 2월 22일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켓 준비 중.



23년 2월 24일

종이자르는 기계가 입고되었다. 패키지 직접생산하려고 구매했다.



23년 2월 25일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켓을 준비하는 중. 저거 다 에어팟 프로케이스다.



23년 2월 26일

내가 처음으로 재봉틀을 배운게 2011년 이었다. 본격적으로 많-이 돌리기 시작한건 2014년 부터지만. 여튼, 살면서 처음으로 바늘에 손톱을 뚫려봤다. 아프긴 아팠는데 일이 많아서 그냥 일했다.  

23년 3월 1일

네모가방을 개발했다. 샘플은 바로 나의 가방이 되었다. 

23년 3월 2일

네모가방이 몹시 마음에 들어서 바로 다음날부터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23년 3월 7일

블렌더로 디자인한 전시대를 아크릴 가공업체에 맡겼는데 결과물이 도착했다. 계획대로 끼워보니 딱딱 잘 들어가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23년 3월 14일

얼마나 팔릴지 알 수 없어서 일단 많이 제작했다. 에어팟 프로케이스 제작은 정말 힘들다.. 정말... 조각도 많고, 기계도 다양하게 들어가고, 일이 많다... 준비 끝!



23년 3월 17일 ~ 19일

드디어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켓 행사! 기시히 인스타그램을 보고 많이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직접만나서 이야기하는건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매출의 크기와 별도로, 앞으로 이런 좋은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정말 좋았다는 것이다. 

 기억나는 재미있었던 일이라면, 버즈케이스 샘플을 딱 하나 들고 갔는데 둘쨋날 어떤분께서 사고싶다고 하셨다. 샘플이라 하나밖에 없어 지금은 판매가 곤란하고 내일 오후 늦게 오면 판매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다음날 마감시간에 오셔서 사가셨다. 잘 사용하고 있으시길..!



23년 3월 26일

대구 삼덕동에 위치한소품샵인 '프로젝트 백샵'에 입점했다. 입점 연락을 할지말지 너무 고민하고 있었는데(그냥 막연한 두려움) 친한 후배가 동기라고 하길래 '그렇다면 나의 후배?'라는 생각에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입점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입점을 받아주셔서 입점했다. 

23년 3월 30일

 사실 3월 22일, 친구랑 작업실에서 놀기로 해서 트레이더스에 사케를 사러가는길에 메이커스 마크에서 연락이와서 계속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3월 30일, 오전에 메이커스마크랑 최종 계약서를 받고 "야호!!!"하며 드럼두드리는 영상까지 찍고 기분이 하늘 끝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미리 예약한 병원을 방문했는데.... 글쎄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왠지 발목이 아프더라... 크리에이티브 마켓 한다고 서울 간 내내 아프더라... 오전에 기분이 +100이었는데 오후에 -100이 되었다. 1층가서 약받고 화장실가서 눈물 좀 닦고 찍은게 ↗ 저사진이다. 겸손하게 살라고 내게 이런 시련을 주셨는가..! 여튼 바로 겸손해졌다. 



23년 4월 14일

https://www.youtube.com/watch?v=q8XjKtFnXZw 영상 촬영이 있어서 오전에 화장도 받고, 머리도 받고왔다. 작업하는 영상 촬영이라 시꺼멓게 입고 촬영했는데 영상보니까 진짜 작업복이긴 하더라! 내 작업실에서 촬영이라 나도 촬영 내용과 동선을 좀 생각해놨더니 촬영이 매우 빨리 끝났다. 그래서 매니저님과 촬영감독님과 대구투어도 했다. 미성당 납작만두 본점가서 납작만두 먹고, 회성각가서 쭝화비빔밥 먹고, 막창 먹고, 하이볼도 마시고, 꼬치집도 갔다가 북성로불고기&우동으로 배 든든-하게 채워서 서울로 돌려보내드렸다! 서울사람들은 배터지게 먹을 자신이 없다면 기시히와 함께 저녁 먹자고 하지 마라!



23년 4월 19일

메이커스마크 굿즈로 생산되는 컵홀더 일부를 빨간색으로 제작하기 위해 청바지 염색을 했다. 염색후에는 세탁기가 알아서 해줄 수 있지만 염색은 직접 해야한다. 큰-냄비 두개에 물 팔팔 끓여서 큰 대야에 붓고, 염색약 붓고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조물조물 해줘야 잘 염색된다. 뜨겁긴한데 뜨거워도 해야한다..!

23년 4월 26일

메이커스 마크에서 프로필 사진을 달라고 했는데... 글쎄 작업실에 카메라도 있고, 조명도 있으니까 '직접 찍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해서 찍었다. 사진은... 정말 쉽지 않다. 재봉틀이나 잘돌려야겠다.  

23년 5월 16일

굿즈 포장까지 다 완성했다. 작업실에서 필요한 이것저것 주문하다보면 가끔 저런 엄-청 큰 비닐이 오곤하는데, 무작정 보관해뒀더니 쓸 데가 있어서 좋았다. 아트워크도 마무리 작업을 했다. 작품안에 그동안 모아온 자투리를 가득 채웠더니 50kg는 족히 넘어 뒷부분 마무리를 재봉틀로 할 수 없어서 손바느질로 마무리 했다. 



23년 5월 17일

오전에 화물로 메이커스마크 아트워크랑 굿즈를 보내고, 아트워크 작품이 도착하기 전에 나도 행사장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KTX가 더빠르니까! 현장에서 왁스를 부었는데 내 기대보다 예쁘게 나오지 않아서 속상했다. 서울까지 갔는데 일만하고 대구 내려오기 억울해서 명동교자 먹고 집에왔다. 명동교자 최고!



23년 5월 26일

워크샵이 있어 메이커스 마크 행사장에 방문했다. 경기도에서 재봉틀 6대를 다마스로 받아오고, 준비물은 내가 대구에서 캐리어에 넣어 가져갔다. 뭐 하나라도 틀어지면 큰일나서 조마조마했는데 행사가 재미있게 무사히 끝나서 너무 다행이었다. 수술 전 마지막 일정이었다. 



23년 5월 30일

메이커스 마크 워크샵 끝나고 대구 내려갔다가 이틀간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5월 30일 서울로 올라와 발목 골연골염 수술을 했다. 자세한 수술 이야기는 https://blog.naver.com/kisihi_/223144553378 블로그에 적어두었다. 발목 삐고 방치하면 수술비&통원 1,200만원. 재활 주 2회가야하고 1회당 97,900원 기억하자! 재활 최소 2달 가야한다. 최소가 2달이다. 발목 삐면 꼭 병원 가길..!

아, 이날 재미있었던건 아침에 병원도착해서 데스크에서 서서 서류 작성하고 있는데 오휘에서 콜라보레이션 연락왔다. 혹-시나 급한일 있을까봐 노트북 챙겨갔는데 환자복 갈아입고 노트북 열어서 오휘 답장 보내줬었지...



23년 6월 9일

재봉틀은 오른쪽 다리를 쓰기 때문에 급한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왼쪽 다리로 지지를 하지 않으면 재봉틀을 돌릴 수가 없더라! 재봉틀이 불가능했지만 밀린 맞춤제작 건이 있어서 해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사장이라 좋은점은 병가를 내맘대로 내도 된다는 것이고, 사장이라 안좋은점은 내가 할 일은 누군가 대신해주지 못한다. 



21년 6월 21일

수술하고 2주가 지나 발을 디뎌도 된다고 했지만 발 디디면 아파서 못디디지만 이 또한 미리 예약한 맞춤제작건이라 해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23년 6월 23일

원래 쓰던 양문형 냉장고는 저번 사무실에 전 세입자가 버려놓고 간걸 계속 사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장이 나고 말았다. 고치느냐 새로 사느냐 길로에서 더 작은 냉장고를 새로 사는 옵션을 택했다. 사무실 근처에 밥사먹을 곳이 없어 밥을 해먹는데 늘 설거지 하기가 어려워(뜨거운물 안나옴) 식세기도 샀다. 식세기 사고 나니 정리가 안되어 렉을 구매했다. 그렇다. 일을 못하니 다른 일을 벌려서 해내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목발없이 화장실도 가기 힘들지만 의자타고 다니면서 저 큰걸 알바친구랑 둘이서 해냈다! 나의 자랑스런 탕비실!



23년 7월 4일

발 디디는것은 물론이고 약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다가 일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쁘던지!!! 신나서 머릿속에만 있던 리본가방 개발을 개발했다! 이 가방도 바로 내가방이 되었다. 



23년 7월 19일

7월 초에 집에 건조기를 샀는데 한 번도 안써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써보면 없이 못사는 가전이 건조기더라. 작업실에 꼭 필요한 기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집에 건조기 산지 10일만에 작업실 건조기도 구매했다. 사고 나니까 오휘랑 일하게 되어서 건조기 도착한 날부터 바로 하루에 5번 돌리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기가막혔다. 



23년 7월 26일

오휘랑 일하는거 때문에 바지가 700정도 입고 되었다. 빨고 건조기 돌리는 것 까진 알바 시켜도, 건조기에서 꺼내면서 선별하는건 모두 내가 했는데, 건조기에서 옷 꺼내다가 왠지 이 바지 내 바지 같았다. 입어보니 찰떡이더라. 23년 한 해동안 1,000벌 거뜬 넘는 청바지가 내 손을 거쳐갔는데 내 바지는 딱 이거 한 벌 뿐이었다. 남편바지는 너무 많이 가져와서 이제 안가져올정돈데 말이다. 

또, 생각이상으로 멀쩡한 바지가 너무 많아서 kisihi.com/jeans 에서 청바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3년 7월 31일

오휘 굿즈 생산 수량이 많아서 미친듯이 바지만 뜯었다. 작업실엔 오로지 사각사각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23년 8월 2일

이때쯤 알았다. 기시히는 대량 수량 생산이 어렵다는 것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유일하게 아는 철학가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서는 현대인의 우울증은 '할수 있음을 없음'에서 온다고 했다. 나는 내 미래에 제한을 두는 편이다. 기시히가 대량생산이 어렵겠다고 판단하면, 나는 더 작은시장에서만 놀면 되는거다. 또, 업사이클링으로 세상을 구하기엔 많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원래도 일이 힘들긴 했는데 대량생산하려니 일이 더 힘들더라. 너무 힘들었어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때 나랑 같이 바지뜯은 우리 나현이, 어진이. 지원이만 이 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일했는지 알 수 있지... 아이고



23년 8월 9일

건조기에서 먼지가 끝도 없이 나왔다..!



23년 8월 10일

재단 결과물이 나왔다. 이제 일을 반 한것이다!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를 몽땅 가져왔다.



23년 8월 21일

오휘에서 촬영하러 와서 촬영공간만 깨끗하게 치웠다. 촬영한다고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23년 8월 26일

마이백팩을 개발했다!



23년 8월 31일

오휘 납품 완료!



23년 9월 4일

다리가 기형이라 자꾸 다치나 싶어서 검사하러 갔다가 발목재활해야한다해서 발목 재활을 시작했다. 발목 재활하면서 내 몸이 매우 비정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깨도 손가락도 재활하고 있다. 다들... 목, 허리, 관절 아프면 꼭 재활의학과 가길 추천한다.

 아, 다리는 x다리라 보정할 수 있게 깔창을 맞췄다. 작업실에서 늘 깔창깔고 일하는데 확실히 무릎이 안아프다. 




23년 9월 14일

필통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필통 작년에 내것만 딱 만들고 한 번도 판 적이 없었다. 보통 이런식이다.



23년 10월 4일 ~ 8일

오사카를 여행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환경에 관심이 없다는것을 또 깨달았다.



23년 10월 19일

오휘와 콜라보레이션 제품 생산 후 남은 자투리로 카드지갑을 제작해서 텀블벅에 펀딩했다. 



23년 11월 9일

펀딩한 자투리 카드지갑 제작 완성!



23년 11월 23일

일을 급하게 하다가 오버록에 손이 끼여서 다쳤다. 참.... 오버록 하다가 다친건 처음이었다. 살이 잘린게 아니라 찢겨서 더 아팠는데, 2시간동안 피가 안멈춰서 일 끝내놓고 병원 갔다. 안꿰매도 된다고 해서 꿰매진 않았다. 



23년 11월 27일

유진투자증권 굿즈 서울까지 직접 들고가서 납품 완료했다. 오전에 유진투자증권측과 약속이 있어 시간 맞춰갔었어야 했는데 동대구역 출발을 깜빡하고 서대구역에서 출발해서 늦었다. 서울을 셀 수도 없이 갔는데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기차 놓친건 처음이었다. 



23년 11월 30일

전사프린트 때문에 이 기계 살까말까 올 초부터 고민했었다. 막연히 갖고는 싶지만 크게 쓸 일은 없을 것 같아 구매를 미뤘는데 이번에 굿즈 생산하면서 전사가 대량으로 필요해 '에랏!!'하고 구매했다. 매일매일 너무 잘 사용하고 있다. 진작에 살걸!



23년 12월 5일

일하다가 촬영장비에 부딪혔는데 그만 콧등에 살이 푹 찍혀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이없어. 무슨 얼굴까지 다치냐.



23년 12월 8일

도요타 프리우스 굿즈를 납품했다. 제작 시간 2주 정도로 기한이 촉박했으나 납기기한보다 빨리 마무리 해서 잘 보냈다. 



23년 12월 9~12일

3박 4일 오사카 여행을 갔다. 외국사람이 한국놀러와서 메이드인 코리아를 찾을 때 거론될 수 있는 한국산이 되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 돈이 벌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구를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23년 12월 21일

몇일동안 몸이 안좋다 했더니 A형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사실 2주전부터 부정출혈이 있어 중간에 산부인과도 갔는데 원인은 스트레스와 피로누적이었다. 사실 10월 중순부터 주말에 계속 못쉬고 일하다가 부정출혈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도 여행까지 다녀와서 밀린 일 쳐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이나믹한 기시히의 2023년을 느낄 수 있는 정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리 하려고 보니 갤러리에 사진이 없더군요. 정말 바빠서 사진을 잘 찍지 못했습니다. 사진이 없는 중간중간의 나날들은 (1) 눈물을 흘리며 일하고 있거나 (2) 아파서 누워 있었습니다. 정리하고 보니 1월 초에 기업 콜라보레이션 관련해 연락이 온 이후로 늘 피곤하고 아팠네요. 22년까지는 손목만 아팠고 일자목만 있었는데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3년 12월 31일은 일자목과 손목은 괜찮아졌으나 (1) 오른쪽 엄지손가락 (2) 오른쪽 어깨 (3) 오른쪽 발목 (4) 왼쪽 발목이 아픈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픈얘기하면 끝도 없으니 여기까지.




 기시히가 4년이나 살아남을 줄 몰랐습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뻔한 소리 하지 말라고요? 스크롤을 여기까지 내려서 이 글을 읽을 정도라면, 그 덕에 제가 5년차에 접어드는 것이 맞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기시히의 5년을 즐겁게 맞이하는 마음으로 지난 4년을 간략하게 정리도 해보았습니다.

2020년2021년2022년2023년
만 25세.
그동안 모아놓은 돈 조금으로 맨땅에 헤딩.
하루만에 팔로워 3000명이 늘고
이사하고 작업실채움. 번돈 = 쓴돈
계속되는 인터뷰!
상품 개발을 열심히 했다 최저임금은 정도 벌었다
기업과의 일이 끊이지 않았다
진짜 병원을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몸상태에 도달!


 학교다닐때부터 늘 창업의 선상에 있었습니다. 보통은 취업을 많이 선택하지만 전 취업도 창업도 무서웠지만 창업은 남의 선택에 기대하지 않아도 되므로 창업을 선택했는데요. 어린나이에 어디 일해본 경력도 없는 제가 무슨 힘으로 사업을 진행했겠어요. 그저 매년 신년운세 보러가서 '안된다.'하면 '내 탓이 아니라 사주팔자 탓이구나!'하고 일하고 '잘된다'하면 '잘된다고 하니까 더 열심히하자!'하고 일할 뿐이었지요. 2024년의 신년운세를 3달전에 보고 왔는데요. 2022년 2023년은 변동수도 이동수도 많은 해였다면 2024년은 편안-하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간다고 하네요. 지난 4년을 뜨거운 냄비처럼 살았는데 2024년을 어떻게 미즈근하게 보낼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체력충전이 필요한 때라 미즈근한 내년이 기대되네요.





주변에서 모두가 '이런식의 생산은 지속할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다. 원단떼와서 공장돌려서 많이 팔아라.' 라고 말합니다. 그럼 저는 "헤헤; 전 이게 좋아요; 헤헤;'라고 대답하는데요. 숫자계산을 못하는건 아니고요. 일하다보니 사업 크게 키워서 큰 기업 운영할 팔자는 아닌것 같고, 작은 규모로 운영하면서 돈 벌 팔자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가진 신념대로 일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기시히에서 하는 일은 제 생각들을 뱉어내는 것 뿐입니다. 처음 기시히를 시작 할 때 "패션은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계속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3년을 보내면서 꽤 많은 기업의 연락을 받고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오사카 여행을 2번 갔다 오면서 든 생각은 "많이 파는것이 최고"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돌아돌아 제자리'라는 생각을 했네요. 역시 자본주의 세상은 돈이 최고라는 것을 말입니다. 2023년도 '환경보호는 조별과제. 지구는 망한다.'는 생각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요즘 떠오르는 마케팅 방법으로 '짧은 영상'이 유행입니다. 저도 숏츠나 릴스를 자주 보는데요. 한 번 보기시작하면 아무 생각없이 영상을 슥슥 내리다가 1~2시간씩 날려먹곤 합니다. 최근, 짧은 영상을 오래 보다보니 바보가 된 것 같은 멍해지는 느낌을 받아 이제는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문제는 온라인 마케팅을 해야하는 판매자로써, 이것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짧은 영상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것을 알면서 만들어야 한다는것이 썩 마음에 걸립니다. 상품생산도 마케팅도, 모두 필요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하는 운명을 지닌 기시히의 2024년을 기대해주세요.




 24년을 기대하기 전에, 23년의 목표는 잘 이뤄냈을까요?

(1) 오프라인 입점 - 하긴 했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2024년에 더 노력하겠습니다!
(2) [쓰레기 도로 가져가세요] 전시 - 대구에서 하려고 했으나 수술과 바쁜 스케쥴로 취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쓰레기 도로 가져가세요]의 연장선으로 메이커스마크 아트워크를 제작해 을지로에서 전시했습니다. [쓰레기 도로 가져가세요]전시는 할 수 있다면 2024년에 서울에서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의 매력을 알았거든요.
(3) 기시히를 기시히로 유지시키며 살아남기 - 성공했습니다. 많이 팔자와 적게 팔자를 아직도 선택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니 작년 그대로의 기시히입니다.

 목표의 절반이상 이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기치도 못한 큰 콜라보레이션들도 이뤄냈으니 23년은 매우 성공한 해라고 볼 수 있죠!


 이젠 2024년의 목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하나밖에 없어요.

일본 페어 나가기

 일하기 전, 그러니까 코로나 가기전에 방문한 일본은 그냥 싸게 다녀올 수 있는 해외여행국가였는데요. 일을 시작한 후 갔더니, 인구 1억2천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시장을 목표로 4년일했더니 국외로도 나가보고싶기도 하고요. 브랜드 이름도 일본 브랜드 아니냐고 오해도 많이 받았으니 잘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요? キシ ひ 로 카타카나와 히라가나를 섞어서 사용하려고 생각은 해뒀는데 일단 거기까지입니다. 이 외로 해야할 일이라면 고용, 25년에 이사갈 건물 알아보기, 전시 등등이 있는데요. 자연스럽게 해야하는 일들이라 목표로 삼진 않겠습니다. 


 

 

 바쁘면 돈벌어서 좋은데 사유할 시간이 없고, 일없으면 자기 공상에 빠지긴 좋은데 돈이 안되니 지속할 수 없는것이 기시히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네요. 2024년엔 더욱 안정된 기시히를 운영하며 자기만의 생각에 푹 빠져서 재미있는 결과물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까지 기시히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기시히에 전달하실 의견이 있으시면 아래의 폼을 이용해주세요. 익명으로 전달됩니다. 익명이 필요없으신분은 본인을 밝히셔도 됩니다 (?)

~ 1월 7일 23시 55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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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기간: 2023-12-31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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